25일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에그노그를 만들기로 했다.

에그노그라는 이름 자체는 예전부터 알았지만, 내가 부엌에 들어가기만 하면 집이 탈 것 처럼 굴면서 정작 아무도 요리를 하지 않는 집안에서 살다 보니 다 크고 나서야 기회가 생겼다.

 

 

 

 

 

 

 

이 사진들은 에그노그와 함께하게 될 술과 휘핑크림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옐로우 테일 샤도네이는 잘 익은 복숭아와 멜론 등 과즙의 향이 일품인 보급형 호주 와인이(라고 네이버가 말했)다.  타임라인에서 좋은 위스키와 럼을 추천받았지만 돈도 없고 의욕도 없고 힘도 없던 바람에 편의점에서 가장 싸게 파는 손바닥만한 와인을 구매하기로 한 게 화근이었다. 에그노그는 담백한 음료라 과일향이 강하게 나는 와인과는 상성이 미묘하게 맞지 않다. 물론 진작 알았다면 지금 이 글을 적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래의 휘핑 사진은 바닐라빈이 없었던 탓에 휘핑과 바닐라향을 한 번에 처리하기 위해 산 캔 휘핑이다. 사실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그냥 마트에 저것밖에 없어서 샀다가 얻어 걸렸다. 생각해보면 파리바게트 같은 곳에서 생크림 500원인가 1000원에 파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준비과정의 난이도는 난폭했다. 노른자를 분리하라는 게 노른자를 다 깨부숴서 물로 만들라는 소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우유를 두 컵 넣으라고 모 티스토리 블로그가 권고했으나 컵을 설거지하기 귀찮은 관계로 그냥 적당히 남아 있던 우유를 다 꼬나부어버렸다.

 

 

 

 

 

 

 

친구들은 이 사진을 크림떡볶이라고 칭했지만 놀랍게도 저 꾸물거리는 크툴루 같은 줄은 떡이 아니라 휘핑이다.

에그노그를 만들 때는 계란 우유 아무튼 그 외 기타등등을 넣고 데워줘야 하는데  대체 얼마나 데워야 할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너무 많이 데운 나머지 결국 그냥 죽이 되었다. 이래서 사람이 원활한 요리생활을 하려면 계량기가 필수적이다.

 

 

 

 

 

 

에그노그를 완성하고 마셨는데 휘핑을 너무 맹신한 나머지 설탕을 제대로 안 넣었더니 맹맹하고 기묘한 맛이 났다. 이후 해당 레시피를 마셔본 친구 평가로는 너무 맹맹해서 처음엔 나도 모르는 새에 코로나에 걸린 줄 알았단다.

그래도 완성된 에그노그의 모습은 의외로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사진만 본 많은 분들이 '의외로 먹을만 한 것 아니냐'는 의견을 말씀해주셔서 아마추어 사진가로서 매우 큰 위안을 얻었다. 기회가 닿는다면 차모 여러분께도 직접 만든 에그노그를 대접해 드리고 싶다(하지만 마시지 않는 게 현명한 선택일 것 같습니다)

본 완성 사진은 귀여운 인형과 위에 얹어진 달달한 휘핑으로 에그노그를 절묘하게 가리고 있다. 역시 사진은 부속품 배치가 중요하다.

 

 

 

 

 

 

 

 

남은 계란으로는 간장계란밥을 해 먹었다. 에그노그보다 다섯 배 정도 맛있었다. 역시 한국인은 밥에 소스 조지게 뿌려서 먹을 때 가장 큰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냥 요리를 망친 거겠지만

바닐라빈을 처음에 살까 말까 고민할 때 그게 정말 많은 요리 (특히 베이킹) 에 사용된다는 정보를 얻었지만 딱히 열심히 베이킹하면서 살진 않을 것 같아서 포기했었다. 하지만 막상 데운 계란우유반죽을 입에 넣어보고 나니 구운 계란우유반죽은 얼마나 맛이 없을지 호기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조만간 베이킹도 시작해볼 것 같다. 하지만 당분간은 안정적으로 남이 만든 맛있는 차나 마시며 마음의 안정을 취하려고 한다.

life is egg...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행복한 설 연휴를 보내셨으면 좋겠다.

저는 물론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