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28~0730] San Jose (Winchester's Mystery House, Municipal Rose Garden)
숨겨진 아름다움…
아, 아름다운 산 호세! 관광지로 이름이 높은 것 치고 그렇게까지 볼 게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루 이틀 정도 느긋하게 도시를 돌아다닐 정도의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산 호세는 분명 아름다운 곳이다. 이는 부정할 수 없다. 그냥 길만 걸어도 꽤나 볼만한 모양새의 아름다운 정경들이 나온다는 점에서, 여행하기에 무척 괜찮은 곳이다. 그래서 나도 많이 돌아다녔고, 특별한 랜드마크에 방문하지는 않았어도 이곳저곳을 들쑤셨으며 맛있는 것도 잔뜩 먹었다. 그래도 그 중 제일 인상 깊었던 곳은 수많은 공원들이다. 산 호세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캐나다 등의 북미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많다. 식물들이 잘 가꿔진 것을 보려면 식물원까지 가야 하는 한국과는 달리 조경이 잘 되어 있는 게 북미의 정원이다.
그런 아름다움이 특히나 잘 조성되어 있는 게 산 호세라고 난 느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곳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지만, 디즈니랜드보다는 캘리포니아 어드벤처 파크가 좋고 잔잔한 투어보다 번지 점프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차라리 여행 친구가 한 명 있어서 사진이라도 왕창 찍었다면 모를까, 나에게 있는 여행 친구라고는 분홍톢기 한 마리와 왠지 일 줄 것 같은 너구리 한 마리 그리고 시테양요 뿐이라…
Winchester's Mystery House
세계 13대 마경 중 하나로도 유명한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는 의외로 김빠지는 일화에 의해 만들어졌다. 윈체스터 가문의 안주인이 지나가는 영매사를 너무 깊이 믿어버린 탓이다. 사라 윈체스터와 윌리엄 윈체스터는 윈체스터 라이플을 생산했는데, 즉 군사력에 협조했는데, 그것에 맞아 죽은 사람들이 워낙 많았어서 저주라도 받은 건지 자식 남편 기타 가족 등등이 빠르게 세상을 떠버렸다고 한다. 그에 따라 원혼들을 피하기 위해 만든 곳이 바로 이 미스터리 하우스라고 한다.
여기서 믿을 수 있는 교훈은 무려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윈체스터 가문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저 거대한 집을 지었다 부쉈다 할 수 있었던 것은 돈이 썩어빠지게 많았던 덕이며, 그것은 윈체스터 가문의 사람들이 무기제조업에 임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다. 하여튼 무기는 돈이 된다. 그러니까 군에 비리가 많은 거다. 사라 윈체스터가 윈체스터 라이플에 맞아 죽은 사람들을 진심으로 무서워했으면 그 무기를 팔아 번 돈으로 이런 돈난리를 하지 말아야 했다. 차라리 기부를 하던가 이게 무슨 짓이람…
두 번째 교훈은 하여간 사람이 기행을 하고 죽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봐라, 이렇게 기행을 벌인 결과가 이것이다. 내가 만약 죽었는데, 사람들이 내 집을 들쑤시고 다니며 15분에 한 번씩 관광객을 받고 1층에 기념품점을 만들어서 돈을 벌어들이고 있으면 무덤에서 부활해 나올 것 같다. 정말로 공포스러운 일이다.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는 다양한 마경으로 인해 인기가 높은 곳이지만, 그와 별개로 직접 들어갔을 때 투어로는 별로 볼만한 것이 없었다. 투어 가이드가 열심히 안내를 해주긴 하지만 안은 쓸데없이 넓고 복잡하며 내가 귀신이라면 욕을 할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신기한 마경 같은 것들은 대부분 길이 막혀 있어서 볼 수 없고, 그나마 사람 사는 구실을 하는 멀쩡한 곳만 파악이 가능했기 때문에 김빠지는 면이 없잖아 있었다.
물론 지나오는 길에, 문을 열어서 섣불리 나가려 들었다간 창밖으로 떨어지는 죽음의 문? 이나, 문을 열면 벽이 있는 문 (door to nowhere라고 표현하더라) 등등이 있긴 했지만 아무튼 대충대충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투어는 대부분 사람 사는 곳 위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빈티지한 느낌이 살아 있긴 했어도 MMORPG에 등장하는 던전 같은 느낌이 좀 더 강했고, 현실의 마경이라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다. 귀신이 성가셔서 암살을 포기할 것 같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걸까 싶긴 하지만, 정작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때 사라가 자신이 만든 방에 스스로 갇혀버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역효과를 낸 것 같기도 하다.
Municipal Rose Garden
위에 내가 산 호세를 소개할 때, '특히나 정원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적은 바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뮤니시펄 로즈 가든일 것이다. 이곳은 유명한 랜드마크로도 알려져 있는데, 무려 입장료가 공짜다. 볼 것이 많지는 않지만 잘 관리 되어 있는 장미 정원과 분수의 조합이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 주었다.
특별히 적을만한 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산 호세에서는 별달리 한 게 없어서… 미스터리 하우스를 구경한 다음에 집에 가서는 글을 조금 썼고, 오늘 다녀온 장미 정원 위에 그림을 조금 덧그리면서 느긋하게 샤워 하고 오래 잤다. 예상한 것 이상으로 자버려서 바로 다음 날이 되어버린 게 꽤 슬프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나쁘진 않았다.
그리고 정말로 나쁘지 않았다. 이 다음 LA~애너하임 글에서 적게 될 것이지만, 내가 이후 무슨 일을 겪게 될 지 생각하면, 이 날 내가 충분히 체력과 금전을 비축해둔 것은 신의 한수를 넘어서 내 목숨까지 살린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이 글은 8월 1일에 적히고 있다. 그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 (미루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