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낡았다. 너무나도 낡아버리고 말았다. 때문에 시테양요 사진을 까먹었음. 내 아이덴티티가...

숨겨진 아름다움…

 아, 아름다운 산 호세! 관광지로 이름이 높은 것 치고 그렇게까지 볼 게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하루 이틀 정도 느긋하게 도시를 돌아다닐 정도의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차후 적을 뮤니시펄 로즈 가든의 분수 사진. 뭔가 저쪽에 넣긴 심심해서 이쪽에...


 산 호세는 분명 아름다운 곳이다. 이는 부정할 수 없다. 그냥 길만 걸어도 꽤나 볼만한 모양새의 아름다운 정경들이 나온다는 점에서, 여행하기에 무척 괜찮은 곳이다. 그래서 나도 많이 돌아다녔고, 특별한 랜드마크에 방문하지는 않았어도 이곳저곳을 들쑤셨으며 맛있는 것도 잔뜩 먹었다. 그래도 그 중 제일 인상 깊었던 곳은 수많은 공원들이다. 산 호세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캐나다 등의 북미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많다. 식물들이 잘 가꿔진 것을 보려면 식물원까지 가야 하는 한국과는 달리 조경이 잘 되어 있는 게 북미의 정원이다.
 그런 아름다움이 특히나 잘 조성되어 있는 게 산 호세라고 난 느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곳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지만, 디즈니랜드보다는 캘리포니아 어드벤처 파크가 좋고 잔잔한 투어보다 번지 점프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다소 심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차라리 여행 친구가 한 명 있어서 사진이라도 왕창 찍었다면 모를까, 나에게 있는 여행 친구라고는 분홍톢기 한 마리와 왠지 일 줄 것 같은 너구리 한 마리 그리고 시테양요 뿐이라…



Winchester's Mystery House

 세계 13대 마경 중 하나로도 유명한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는 의외로 김빠지는 일화에 의해 만들어졌다. 윈체스터 가문의 안주인이 지나가는 영매사를 너무 깊이 믿어버린 탓이다. 사라 윈체스터와 윌리엄 윈체스터는 윈체스터 라이플을 생산했는데, 즉 군사력에 협조했는데, 그것에 맞아 죽은 사람들이 워낙 많았어서 저주라도 받은 건지 자식 남편 기타 가족 등등이 빠르게 세상을 떠버렸다고 한다. 그에 따라 원혼들을 피하기 위해 만든 곳이 바로 이 미스터리 하우스라고 한다.

13모양이라는 정원. 가까이 보면 별 다른 점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여기서 믿을 수 있는 교훈은 무려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윈체스터 가문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저 거대한 집을 지었다 부쉈다 할 수 있었던 것은 돈이 썩어빠지게 많았던 덕이며, 그것은 윈체스터 가문의 사람들이 무기제조업에 임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다. 하여튼 무기는 돈이 된다. 그러니까 군에 비리가 많은 거다. 사라 윈체스터가 윈체스터 라이플에 맞아 죽은 사람들을 진심으로 무서워했으면 그 무기를 팔아 번 돈으로 이런 돈난리를 하지 말아야 했다. 차라리 기부를 하던가 이게 무슨 짓이람…
 두 번째 교훈은 하여간 사람이 기행을 하고 죽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봐라, 이렇게 기행을 벌인 결과가 이것이다. 내가 만약 죽었는데, 사람들이 내 집을 들쑤시고 다니며 15분에 한 번씩 관광객을 받고 1층에 기념품점을 만들어서 돈을 벌어들이고 있으면 무덤에서 부활해 나올 것 같다. 정말로 공포스러운 일이다.
 윈체스터 미스터리 하우스는 다양한 마경으로 인해 인기가 높은 곳이지만, 그와 별개로 직접 들어갔을 때 투어로는 별로 볼만한 것이 없었다. 투어 가이드가 열심히 안내를 해주긴 하지만 안은 쓸데없이 넓고 복잡하며 내가 귀신이라면 욕을 할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신기한 마경 같은 것들은 대부분 길이 막혀 있어서 볼 수 없고, 그나마 사람 사는 구실을 하는 멀쩡한 곳만 파악이 가능했기 때문에 김빠지는 면이 없잖아 있었다.

사라 윈체스터의 집. 예쁘게 집.꾸도 되어 있다. 영혼이 세상에 있다면 이래서는 안 된다. 이건 뭐 대략 수치의 장이 아닌가...


 물론 지나오는 길에, 문을 열어서 섣불리 나가려 들었다간 창밖으로 떨어지는 죽음의 문? 이나, 문을 열면 벽이 있는 문 (door to nowhere라고 표현하더라) 등등이 있긴 했지만 아무튼 대충대충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투어는 대부분 사람 사는 곳 위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빈티지한 느낌이 살아 있긴 했어도 MMORPG에 등장하는 던전 같은 느낌이 좀 더 강했고, 현실의 마경이라는 생각은 딱히 들지 않았다. 귀신이 성가셔서 암살을 포기할 것 같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걸까 싶긴 하지만, 정작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때 사라가 자신이 만든 방에 스스로 갇혀버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역효과를 낸 것 같기도 하다.

Municipal Rose Garden

 위에 내가 산 호세를 소개할 때, '특히나 정원이 아름다운 곳'이라고 적은 바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뮤니시펄 로즈 가든일 것이다. 이곳은 유명한 랜드마크로도 알려져 있는데, 무려 입장료가 공짜다. 볼 것이 많지는 않지만 잘 관리 되어 있는 장미 정원과 분수의 조합이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 주었다.

많이 찍었다. 진짜 많이 찍었음.


 특별히 적을만한 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산 호세에서는 별달리 한 게 없어서… 미스터리 하우스를 구경한 다음에 집에 가서는 글을 조금 썼고, 오늘 다녀온 장미 정원 위에 그림을 조금 덧그리면서 느긋하게 샤워 하고 오래 잤다. 예상한 것 이상으로 자버려서 바로 다음 날이 되어버린 게 꽤 슬프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나쁘진 않았다.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실용성 없는 굿즈는 안 산다는 나의 철칙 아래 사진 않았다. 그냥 구경만 했음. 예쁘긴 하더라


 그리고 정말로 나쁘지 않았다. 이 다음 LA~애너하임 글에서 적게 될 것이지만, 내가 이후 무슨 일을 겪게 될 지 생각하면, 이 날 내가 충분히 체력과 금전을 비축해둔 것은 신의 한수를 넘어서 내 목숨까지 살린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로 이 글은 8월 1일에 적히고 있다. 그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 (미루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