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는 언제 타도 재미있다.

 

"The Security was a shit"

 샌프란시스코로 향하기 위해 비행기를 탈 때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7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5시 반에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5시 반에 인간이 이렇게 많을 줄 누가 감히 예상했겠는가? 내 가방은 안에 들어 있는 향수 때문에 한 번 검색대에 걸렸고, 이를 확인하는 데 무려 30분이 걸렸다. 그 덕분에 난 7시 비행기를 보기 좋게 놓쳐 버렸고,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려다 지각해버린 다른 사람을 만나 친구가 됐다.
 정말로, 진심으로 말하는 건데, 미국의 공항은 일처리가 느리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사람들과 짐, 빛의 속도로 진행되는 검사에 익숙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은 다르다. 미국 사람들은 빨리빨리 한다는 개념이 없다. 사람들은 모두 느긋하게 걸어다니고, 가끔 승객들과 농담따먹기를 하며, 일을 느긋하고 꼼꼼하게 진행한다. 물론 이것이 사고의 확률은 더 낮을 것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준다는 점에는 부정의 여지가 없다. 그래도 한국인의 빨리빨리 정신을 기대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큐리티를 거치는 데 1시간 반 이상이 걸려서 내가 지각한 것에 대한 욕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미국 욕을 할 수 없다. 영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침 미국 현지인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행기를 놓치면서 계속 저 소제목 같은 대사(Security was shit)를 한 덕분에 비행기를 놓친 사람들은 주문처럼 그것을 외우며 다음 비행기를 찾아 좀비처럼 걸음을 옮겼다. 시큐리티가 거지 같다. 시큐리티가 거지 같다. 시큐리티가 거지 같다…
 심지어 시큐리티만 거지 같은 게 아니었다. 유나이티드 항공에서는 나에게 QR코드 (상담원과 연결시켜준다고 말해 놓고 영원히 상담원이 이를 읽지 않는) 하나만 달랑 준 다음, 알아서 하라고 말하고 떠버렸다. 당연히 방법을 찾을 수 없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또래의, 같이 시애틀 공항에 갇힌 친구 한 명과 영원한 고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우선 QR코드 연락을 시도했다가 되지 않자 옆 부스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SOS를 쳤고, 그들이 다음 샌프란시스코에 가는 항공의 담당자를 찾으라길래 그렇게 했고, 거기서도 답을 찾지 못하자 인포메이션 센터에 갔고,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또 그 똑같은 QR코드를 주고, 그 QR코드 연락이 다시 씹혔고, 마지막 희망의 끈이라고 생각한 유나이티드 항공의 다른 출입구 부스에서 한참을 빈 끝에 새 항공기의 티켓을 얻어냈다. 그 때 나는 2002년 붉은 악마들이 그랬던 것처럼 부스 앞에 무릎을 꿇고 오열했다. 부끄러움 따위는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적는 것인데, 만일 security가 shit여서 비행기를 놓쳤을 때는 같은 항공사의 출입구 부스를 찾아가 다음 티켓으로 바꿔달라고 비는 것이 가장 빠르다. 인포메이션 센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통은 같은 항공사만이 티켓을 바꿔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해준 전우에 대한 예의로 커피 한 잔을 사준 뒤 나는 비행기에서 기절했다. 하지만 나의 고난은 고작 이 정도로 끝나지 않았다.

케이블 카 지옥

 샌프란시스코! 본격적인 캘리포니아 주의 진입이다. 캘리포니아는 미국 내에서도 관광지로 이름이 매우 높은 곳 중 한 군데이며, 샌프란시스코는 그 중에서도 유명한 축에 속하는 관광지이다(물론 이름값 자체는 LA가 더 높다고 생각하지만). 미국에서 교통이 제일 제정신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는 장소, 케이블카가 관광 노선으로 지나다니는 도시, 물가가 여전히 제정신이 아닌 서민들의 무덤, 5분 걸으면 그 중 4분을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 지옥의 헬스장 등의 감상을 갖게 만들었다. 뒤로 갈 수록 부정적으로 변하는 것은 그러려니 하자. 아무튼 샌프란시스코를 진심으로 즐기고 싶다면 일단 교통수단을 이용할 돈을 아주 넉넉하게 준비하는 것이 좋다. 걷다가 열사병으로 죽기 싫으면.
 샌프란시스코의 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은 이미 유명한 여러 가지가 있다. 뮤니 교통 패스, 클리퍼 교통 카드 등이 있는 상황에서 나는 클리퍼 교통 카드를 선택했다. 그렇게까지 넓지 않은 (내 숙소에서 피셔맨즈 와프까지는 고작 도보로 1시간 20분 정도가 걸렸다) 도시, 밖으로 나다니는 것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는 나의 성격상 평범하게 클리퍼 카드를 이용하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뮤니 패스는 1일권, 3일권, 7일권으로 나눠 원하는 만큼 샌프란시스코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바트라는 전철을 이용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연속된 날만 사용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애초에 그 가격이 그렇게 낮지도 않다. 케이블카를 무한으로 타고 싶은 사람이라면 쓸만하겠지만, 케이블카의 줄을 기다려보면 절대 할 짓이 못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다.

 

이렇게 생겼다.


 그렇다. 케이블카라는 낭만에 찌든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지 상상해보자. 한 번 샌프란시스코에 들른 김에 케이블카에 한 번 매달려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얼마나 흔하겠는가? 그래서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서는 평균 1시간 반(평일 오후 기준), 30분(평일 오전 기준)을 기다려야 한다. 나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평일에 도착했지만 그럼에도 이 웨이팅을 견디다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됐다. 만일 주말에 케이블카를 타고 싶다면 평균 2시간 정도는 각오하자.
 아무튼 샌프란시스코의 교통은 정말로, 나쁘지 않다. 걸을 일을 고의로 만들지만 않는다면 그렇다. 케이블카부터 다양한 노선의 경전철, 버스 종류도 다양하며, 바트까지. 그야말로 제발로 걸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된 도시다. 교통 수단의 관리 자체도 매우 잘 된 편이기 때문에 노숙자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광경도 그렇게 잦지 않으며, 많은 사람들이 마음 놓고 교통 수단을 이용하고 있었다(그와 별개로 샌프란시스코라는 도시 자체의 치안이 썩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어디에나 노숙자는 있으니까 주의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됨!).

 

케이블카를 타고 지나온 길들. 얼핏 보면 평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까마득한 오르막과 내리막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이런 오름이 정말로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의외로 개인 교통 수단을 선호하지 않는다.


 또, 전철 중에서 공항을 연결하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바트의 경우 굉장히 요금이 비싸다. 다행히도 항상 비싼 것은 아니고 어디 멀리까지 가느냐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는 게 장점이긴 하다. 그래도 나는 10불이나 나왔다. 정말 무서운 도시다. 공항철도를 한 번 타는데 요즘 환율 기준 + 수수료로 14000원이 나간다고 생각해 보자. 이래서 집나가면 개고생이라고 하는 것이다.

Fisherman's Wharf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를 고르라고 하면 보통 이곳이 나올 것이다. 그만큼 이 공간은 많은 역사와 사람들의 발걸음이 녹아 있다. 이곳을 기점으로 운영되는 교통 수단도 상당히 많다. 당장 샌프란시스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케이블카가 이곳을 종점으로 다니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위에서 언급한 케이블카 지옥도 피셔맨즈 와프에 도착한 후에 본 광경이었다.

 

꽃게가 마스코트인 것 같다. 보면 배고파진다.


 그래도 랜드마크 거리인 만큼 다양한 볼거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번에 다녀온 시애틀의 재래시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우선 이곳은 바닷가에 있는 만큼 실제로 일을 하고 있는 어부들과 고기잡이용 선박의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고,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서 바다를 바라보면 사람들의 활기가 그대로 피부에 전해져 온다. 물론 이곳도 역시 인간이 싫은 사람이 오기에 적절한 장소는 아니지만, 경치에 포커스를 맞추더라도 큰 문제가 되진 않게 느껴진다..
 사실 이곳에 오지 않으면 샌프란시스코를 제대로 즐긴 것이 아니라는 회의적 태도의 수기를 몇 번 본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단적으로 말하건대, 사람에 따라 다른 부분이라고 하겠다. 이곳은 분명 사람들의 활력과 (조금 오염되어서 탁한 옥빛으로 변해버린 탓에 인간의 환경 오염의 심각성에 대해 깨닫게 만들긴 하지만 일단은 볼만한) 바다를 즐기기 좋은 곳이지만, 반드시 와야 하는 곳은 아닌 것 같다.
 물론 한 번 와봐서 나쁠 것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실제로 쇼핑을 잘 즐겼다. 하지만 볼거리가 많다 + 물가가 비싸다는 뭐다? 거지가 된다… 돈을 잘 챙기도록 하자.

Cable Car Museum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냥 구경하기에 좋은 곳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케이블카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샌프란시스코의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기술력과 역사를 자랑하기 위해 만들어둔 곳이지만, 나라 하나의 역사가 기원전까지 거슬러가는 일이 흔한 아시아의 민족으로서 "그렇구나…" 이상의 반응은 나오기 어려우니 뭐 크게 기대하진 않아도 좋다.
 물론 수많은 톱니바퀴와 부품들이 맞물려 굴러가는 케이블카의 모습은 꽤나 장관이고, 마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근대적인 풍취가 있다. 그리고 이 박물관은 그 부분을 정확히 잘 찔렀다고 할 수 있다. 밑에서는 실제 케이블카와 관련된 각종 공정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를 견학할 수도 있었다.

 

사람들이 끝내주게 바빠 보인다.

 

Golden Gate Bay Cruise

 우선 탑승하면 부드러운 여성 투어 가이드의 음성(녹음됨)이 쉴 새 없이 가이드 정보를 읊어준다. 이 다리는 어쩌고, 이 샌프란시스코의 역사가 어쩌고, 놀랍게도 하나도 안 들린다. 파도가 배에 부딪히는 소리나 배가 기동하면서 울리는 엔진 소리가 훨씬 세기 때문이다. 마치 한국 영화의 쓸데없이 큰 음향 효과에 등장인물의 대사가 다 파묻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투어의 투어 가이드를 듣고 싶다면 우선 이 지옥의 엔진음에서 도망쳐야 하는데, 내가 배를 한 바퀴 1층 2층 다 돌았는데도 여성분의 목소리가 엔진음을 이기는 곳은 없었다. 그냥 설명은 포기하는 게 마음 편하다는 걸 깨닫고 이어폰으로 음악이나 들으며 경치를 즐겼다.

 

멋진 배, 그리고 멋진 성조기의 모습. 바다는 조금 오염된 것 같았다…


 이 크루즈 투어의 이름의 출처는 명확하다. 샌프란시스코와 소살리토를 연결하는 거대한 다리, 골든 게이트 교를 둘러 지나가기 때문에 골든 게이트 베이 투어인 것이다. 정말 멋진 다리임이 자명하지만, 멀리서 보기에는 광안대교가 쪼끔 더 멋있다. 저 골든 게이트 교도 밤이 되면 불을 뿜는다는 얘기가 있지만 아무튼 내 눈에는 안 보이니 광안대교가 이겼다. 물론 이 골든 브릿지 뷰의 규모와 크기, 높이 등은 감히 다른 것들에 비할 수준이 되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 멋있었다. 날씨가 나빴던 게 너무너무 아쉬웠을 정도로.


 여름의 미국은 그야말로 살인적인 더위를 뽐내기 때문에, 적당히 흐려서 태양빛이 가려진 날 바다를 가르며 빠른 바닷바람을 맞는 건 좋은 선택이라 볼 수 있겠다. 머리가 다 틀어지긴 했어도 더위에 찌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 정도의 강한 바람이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멀미를 유발할 정도의 덜컹거림이 심하진 않다. 물론 나는 뱃멀미가 전혀 없다시피 한 사람이므로 객관성은 없는 정보지만…) 거대한 다리의 밑으로 가로지르는 동안 종종 맨몸으로 보트나 보드를 타는 사람들이 보이기도 한다. 이것이야말로 여름이라는 느낌을 제대로 받고 싶다면 강하게 추천 가능한 코스.
 1층에는 바가 있는데, 칵테일도 팔고 맥주도 팔고 그 외의 음료수나 간단한 간식거리를 판다. 크루즈를 타면 역시 칵테일을 한 잔 마셔주는 게 예의일 것 같아서 나는 체리 칵테일 한 잔을 마셨다. 무드 있긴 했지만 바람에 달달 떠느라 그렇게 좋은 선택 같지는 않았다. 위에서는 낭만적인 것처럼 적어두긴 했지만 바람이 정말, 아주 심하게 강하므로 내가 추위에 정말 조예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날씨에 대해서도 고려해두는 게 좋을 것이다.

 

내가 탔던 케이블카의 모습. 정확히는 저 케이블카 다음 다음 다음 다음 정도의 케이블카를 탔다. 기다리기 고역이었다.


이젠 마치기도 귀찮군...
대충 돌아다니면 일지가 자동으로 써졌으면 좋겠다....